
화폐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근본적 시각 차이
케인즈 학파와 오스트리아 학파는 화폐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 매우 상이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케인즈 학파는 화폐를 근본적으로 국가에 의해 창조되고 통제되는 법정 구성물로 봅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에 따르면, 화폐는 근본적으로 '차타리즘(chartalism)'에 기반하여, 국가가 세금 납부 수단으로 지정함으로써 그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화폐는 본질적 가치보다는 국가의 신용에 의존하며, 정부의 경제 정책 도구로 활용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반면, 오스트리아 학파는 화폐가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사회적 현상이라고 이해합니다. 칼 멩거의 화폐 기원 이론에 따르면, 화폐는 정부 명령이 아닌 시장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선택과 상호작용을 통해 등장했습니다. 가장 교환 가능성이 높은 재화(예: 금, 은)가 자연스럽게 화폐로 선택되었으며, 이는 국가 개입 이전부터 존재했던 현상입니다.
이러한 근본적 시각 차이는 화폐의 역할과 관리에 대한 접근 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케인즈 학파는 화폐를 경제 관리의 도구로 보기 때문에, 경기 변동에 대응하여 화폐 공급을 적극적으로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불황기에 정부가 화폐 공급을 증가시켜 총수요를 자극하고, 호황기에는 이를 축소하여 과열을 방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경제의 안정화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즈의 기본 철학과 일맥상통합니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화폐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라면, 그 가치와 공급 역시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에 따르면, 정부의 화폐 공급 조작은 시장 신호를 왜곡하고 잘못된 자원 배분을 초래하며, 결국 더 심각한 경기 변동의 원인이 됩니다. 미제스의 '화폐와 신용 이론'에서는 인위적으로 낮춰진 이자율이 비지속 가능한 투자 붐을 일으키고, 이것이 필연적으로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화폐 정책과 경제 안정성에 대한 대립적 관점
케인즈 학파와 오스트리아 학파 사이의 근본적 대립은 화폐 정책과 경제 안정성 문제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케인즈 학파는 화폐 정책, 특히 중앙은행의 이자율 조절이 경제 안정화의 핵심 수단이라고 봅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경기 침체는 기본적으로 총수요의 부족에서 비롯되며, 이는 확장적 통화 정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케인지안 접근법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채택한 제로금리 정책과 양적완화 프로그램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케인즈 학파의 현대적 계승자들은 이러한 정책이 대공황과 같은 심각한 경제 붕괴를 방지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들은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경제 성장에 필요하며, 디플레이션은 소비 연기와 경제 침체를 야기하므로 피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이러한 케인지안 접근법을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봅니다. 하이에크는 "가격과 생산"에서 중앙은행의 인위적인 이자율 조작이 시장의 자연적인 조정 과정을 방해하고, 자원의 오배분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에 따르면, 경기 침체는 이전의 인위적인 붐(boom) 기간 동안 축적된 잘못된 투자(malinvestment)를 청산하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중앙은행이 이러한 자연적 조정 과정을 화폐 공급 확대로 방해할 경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지연시키고 더 큰 불균형을 축적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숙취를 더 많은 알코올로 치료하려는 것과 같다고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들은 비유합니다. 또한 오스트리아 학파는 디플레이션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생산성 향상에 따른 자연적 디플레이션은 모든 사람의 구매력을 높이고 저축을 장려하며, 이는 장기적인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머레이 로스바드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산업화 시대가 전반적인 물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는 점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건전화폐와 자유시장 : 오스트리아 학파의 대안적 비전
화폐의 본질과 정책에 대한 근본적 견해 차이는 두 학파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화폐 시스템에도 반영됩니다. 케인즈 학파는 국가가 통제하는 불환지폐 시스템이 경제 관리와 안정화에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케인즈 자신은 "바빌론의 포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며 금본위제 폐지를 환영했습니다. 현대 케인지안들은 변동환율제와 독립적인 통화 정책이 각국 경제의 특수성에 맞게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합니다. 그들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사이의 최적 균형을 찾아 관리해야 한다는 '필립스 곡선' 개념을 받아들이며, 따라서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건전한 경제의 필연적 부산물로 간주합니다.
반면 오스트리아 학파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자의적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건전화폐(sound money)'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미제스는 "건전화폐란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화폐"라고 정의했으며, 이는 화폐 가치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으로 오스트리아 학파는 금본위제를 이상적인 화폐 시스템으로 지지해왔습니다. 금은 희소성이 자연적으로 제한되어 있어 정부가 임의로 공급량을 증가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이에크는 말년에 '화폐의 비국유화(Denationalization of Money)'를 주장하며, 민간 기업들이 자유롭게 화폐를 발행하고 경쟁하는 시스템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들 중 다수는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비트코인은 공급량이 2100만 개로 고정되어 있어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유롭고, 중앙 권력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디지털 시대의 건전화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관점에서, 케인즈 학파의 화폐 이론은 단기적 안정을 위해 장기적 번영을 희생하는 접근법입니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은 일시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시장의 자연적 조정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더 큰 불균형을 축적하게 됩니다. 결국 건전화폐와 자유시장은 분리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화폐가 정치적 도구가 될 때,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은 왜곡되고 경제적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화폐 공급과 이자율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과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100년이 넘는 오랜 논쟁에도 불구하고, 두 학파 간의 이러한 근본적 견해 차이는 오늘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미래에 관한 논의에서 여전히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