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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 3사가 싸워 만든 LNG선 세계 1위의 비결

by Factory Boss 2025. 9. 27.

한국 조선 3사가 싸워 만든 LNG선 세계 1위의 비결

초대형선의 등장과 경제성을 가로막은 첫 번째 시련

대한민국 조선업이 LNG 운반선 시장의 판도를 멤브레인(Membrane) 방식으로 바꾸며 성공 궤도에 올랐을 무렵, 시장은 또 한 번의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세계 최대 LNG 공급국인 카타르가 운송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의 13~15만 큐빅 미터(CBM)급을 넘어, 21만 CBM, 심지어 27만 CBM에 달하는 초대형 LNG선을 요구한 것입니다. 배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게 커지자, 기존에 한국 조선 3사가 주도적으로 도입했던 DFDE(Dual Fuel Diesel Electric) 추진 시스템은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DFDE 방식은 여러 개의 발전기 엔진을 가동하여 전기로 배를 움직이는 방식이었는데, 배가 너무 커지자 발전기만으로 동력을 감당하기 어려워 원가가 맞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에 한국 조선업계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습니다.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에 쓰이는 저속 대형 엔진을 탑재하되, LNG 운반선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기화 가스(Boil-Off Gas)를 기존처럼 태워버리는 대신 재액화(Re-liquefaction) 장치를 통해 다시 화물창에 집어넣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운항 동력은 디젤 연료로 쓰고, 화물의 손실을 최소화하여 경제성을 높이려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카타르 발 초대형선(Q-Max)은 비운의 혁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 일가스(Shale Gas)가 터지면서 LNG 수출국으로 급부상하자, LNG 가격은 폭락한 반면 선박의 연료인 기름값은 폭등하여 초대형선의 경제성이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게다가 배 위에 탑재된 초소형 액화 장치가 매우 복잡하여 잦은 고장을 일으켰고, 선원들이 현장에서 수리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점까지 안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시도는 기술적, 경제적 시련으로 끝나며 다음 단계의 혁신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400기압의 배짱'으로 이룬 세 번째 혁신: L-Type G-Engine의 탄생

이러한 시련 이후, 새로운 기회가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이 LNG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하면서 기존 수입 터미널을 수출 터미널로 개조하는 사업이 활발해졌고, 이 새로운 장거리 항로에 필요한 17만 CBM급의 최적화된 선박에 대한 수요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한국 조선업계는 엔진 기술의 세 번째이자 결정적인 혁신을 시도합니다. 바로 저속 대형 엔진을 사용하되 연료를 가스(LNG)로 쓰는 저속 디젤 가스 엔진(L-Type G-Engine)의 도입입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연료 효율을 5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저속 디젤 엔진 실린더 내부의 압력이 약 400기압에 달하는데, 가스를 연료로 분사하기 위해서는 그 압력을 이기고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이나 핀란드의 엔진 제조사들은 상용화에 회의적이었지만, 한국 조선소는 과감한 배짱으로 도전했습니다. 그 해법은 이전 카타르 초대형선에 탑재했다가 고장 문제로 골치를 썩였던 재액화 장치의 고압 펌프 부분이었습니다. 한국 엔지니어들은 이 장치에서 압력을 높이는 부분만 떼어내어 저속 엔진에 가스를 400기압으로 쏴주는 기계로 조합해 버렸습니다. 결국 엔진 메이커와 협력하여 L-Type G-Engine(ME-GI 또는 X-DF)이 탄생했고, 이 엔진은 뛰어난 효율로 운항비를 절감시키며 2017년 이후 건조되는 17만 CBM 이상 LNG 운반선의 새로운 세계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술 혁신이 숨 돌릴 틈 없이, 불과 10여 년 사이에 DFDE → 초대형선/재액화 → L-Type G-Engine으로 세 번이나 연속적으로 제품 표준이 바뀌면서, 뒤따르려던 일본과 중국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기술적 격차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기술 혁신의 원천: 현장 주도의 '우리가 하자' 정신과 무한 경쟁 체제

한국 조선 산업의 LNG선 세계 1위 비결은 단순히 몇 차례의 기술 혁신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그 근간에는 한국 조선업 특유의 치열한 내부 경쟁과 현장 엔지니어 중심의 도전 정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본이 정부의 통제 하에 업체 간 카르텔(조직)을 형성하여 안정된 기술에만 머물렀던 것과 달리, 한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現 한화오션) 3사 간의 무한 경쟁 구도를 유지했습니다. 한 회사가 시장을 주도하면 다른 회사는 더 효율적인 다음 기술을 들고 나와 시장을 다시 흔들었고, 이 끊임없는 '배신의 역사'와 같은 경쟁이 조선업 전체의 혁신 속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러한 혁신은 고객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현장의 철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외국 선주 감독관이 선박 건조 중 밸브의 위치를 바꾸는 등 작은 변경을 요구했을 때, 일본 조선소는 '안 돼요, 어렵습니다'라고 답했던 반면, 한국 조선소는 '오케이, 당장 밤새서라도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라는 자세로 임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후발 주자로서 기술을 배우려는 겸손함과 동시에 어떻게든 시장을 빼앗아 오려는 강한 의지에서 나왔습니다. 그 결과, 똑같은 시리즈의 배라 하더라도 뒤에 건조된 배가 더 진보한 기술이 적용되는 '누적된 진화'를 거치게 되었고, 이는 결국 선주들에게 미묘한 잔고장 없음과 최적화된 운항 환경이라는 품질적 우위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아직 중고선 시장에서는 품질의 꼼꼼함으로 명성이 높은 일본 선박의 가치가 가장 높지만, 한국 조선소는 스펙, 품질, 납기 준수의 삼박자를 갖춘 글로벌 리더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정부나 경제 전문가의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 엔지니어들의 기술 혁신과, 경쟁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동료하며 서로를 발전시킨 내부 경쟁의 저력이야말로 한국 조선이 20년, 30년 이상 세계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