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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이 지배하는 세상 : 중앙은행의 역할과 양극화 심화

by Factory Boss 2025. 9. 30.

중앙은행의 변신 : 통화량 관리에서 금리 통제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빚, 즉 부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켰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신보성 연구위원님과의 대담을 통해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변화가 가져온 경제 시스템의 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영향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겠습니다.

 

과거 1990년대 이전까지 중앙은행은 주로 통화량 관리에 집중했습니다. 시중에 풀리는 돈의 양을 직접 조절함으로써 경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앙은행은 통화량 관리에서 금리 정책으로 기조를 180도 전환했습니다. 과거에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정되던 금리에 중앙은행이 직접 개입하여 목표 금리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시중 금리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폰 미제스(von Mises)와 같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이 비판했던 '사회주의 불가능성 정리'와도 연결됩니다. 즉, 시장의 수많은 개별 주체들이 각자의 시간 선호와 잉여 생산물, 미래 전망 등을 바탕으로 결정하는 금리를 소수의 현자들(중앙은행)이 통제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중앙은행의 금리 통제 정책은 구소련 붕괴 이후 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시장 경제의 근본 원칙인 '가격'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1990년대 이후 중앙은행의 물가 타게팅 정책에서 '자산 인플레이션'에 대한 논의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폴 볼커(Paul Volcker) 시대에는 재화 인플레이션과 자산 인플레이션을 모두 고려했지만, 그린스펀(Greenspan) 시대부터는 자산 가격 상승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는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은 자산 가격의 거품 형성을 용인하고, 결과적으로 자산 시장의 부채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자산 가격이 계속 상승해야 부채 의존 경제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를 통해 자산 가격 하락을 막으려는 '중앙은행 풋(Central Bank Put)'이라는 완화 정책을 상시화하게 된 것입니다.

 

기업 행태의 변화와 극심한 소득·자산 양극화

중앙은행의 금리 통제와 자산 가격 부양 정책은 기업의 행태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과거에는 기업의 본업을 통한 이익 창출과 성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주가 부양과 주주 가치 극대화가 기업 경영의 지상 목표가 되었습니다. 특히 ROE(자기자본이익률)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면서, 기업들은 이 ROE를 높이기 위해 무리한 자사주 매입에 나섰습니다. 보잉(Boeing)의 사례처럼, 흑자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부채를 끌어와 자사주를 매입하고 소각함으로써 자기 자본 비율이 거의 0에 가깝게 쪼그라든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이는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을 훼손하면서까지 단기적인 주가 부양에 매달리는, 대리인 비용의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기업 행태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소득 및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켰습니다. 기업의 이익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주주 몫을 늘리기 위해 근로자 몫을 줄이는 전략이 채택되었고, 이는 자동화와 세계화를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근로자 평균 임금 대비 CEO 보상은 1990년대 이후 극단적으로 높아져 현재는 약 300배에 달합니다. 1979년부터 2019년까지 40년간 하위 10%의 소득이 46% 증가하는 동안, 최상위 1%의 소득은 236%나 증가했습니다. 자산 역시 하위 50%의 순자산은 거의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든 반면, 상위 10%의 자산은 240% 증가했습니다. 이는 결국 하위 50%가 사실상 자산을 보유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초래했습니다. 자산 가격 상승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소수의 자산가들만 막대한 부를 누리고, 대다수 근로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입니다.

 

무형 자산의 시대 : 판타지에 갇힌 욕망과 사회적 불안정

부채 의존 경제와 자산 가격 상승의 욕망은 무형 자산의 비중을 급격히 높였습니다. 과거에는 부동산, 주식 등 유형 자산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가상자산(암호화폐), NFT(디지털 예술 작품), 그리고 기술 기업의 주식과 같이 명확한 가치 평가(밸류에이션)가 어려운 무형 자산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형 자산들은 본질적인 수익 창출이 동반되지 않거나, 배타적 소유권이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끝없이 치솟는 현상을 보입니다. 이는 늘어난 통화량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무형 자산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발생하는 '거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20개가 반포 아파트 한 채와 교환되는 현실은 무형 자산의 가치가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판타지'의 영역에 도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상은 젊은 세대들에게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본업을 통한 소득으로는 자산을 축적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과 같이 생산 활동에서 벗어나 자산 소득으로 빠르게 은퇴하려는 욕구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본업과 상관없이 주식, 코인 등 재테크 공부에 매달리며 전국민이 '애널리스트'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으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노동 생산성을 저해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결국 부채 의존 경제가 자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이는 다시 소득·자산 양극화를 심화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과 사회 통합의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중산층이 붕괴하고 극단적인 계층 분열이 일어난 남미 국가들의 사례처럼, 과도한 양극화는 사회 전체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눈앞의 달콤한 자산 가격 상승 뒤에 숨겨진 거대한 그림자를 직시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과 건강한 사회를 위한 근본적인 성찰과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