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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드 머니 : 돈이 진화한다] 5부 - 국제 통화 시스템의 위기와 글로벌 통화 재설정 요구

by Factory Boss 2025. 4. 2.

국제 통화 시스템의 위기와 글로벌 통화 재설정 요구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와 달러 패권의 여파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중단 선언으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진 이후, 세계는 달러 기반 체제로 이행했지만 그 토대는 처음부터 불안정했습니다. 미국이 세계의 기축통화 발행국으로서 '과도한 특권'을 누리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재무장관이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지적했던 '엄청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은 현실이 되어 미국은 자국 통화로 전 세계 자원을 구매하고, 자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타국에 전가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 연준의 양적완화는 달러 시스템의 신뢰성에 큰 의문을 던졌습니다. 제가 직접 무역 금융 업무를 담당했을 때도 느꼈던 점인데, 달러 패권은 단순한 경제적 현상이 아닌 지정학적 영향력의 도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중동의 석유 무역이 '페트로달러'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또한 미국이 경제제재를 외교 도구로 활용하면서 달러 시스템의 중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란,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에 대한 금융 제재는 달러 시스템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SWIFT 시스템에서의 배제는 한 국가의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국가들이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미국과 정치적으로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탈달러 전략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달러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국제 사회의 불만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새로운 통화 체제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안 통화 시스템의 모색과 도전

세계 각국은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BRICS 국가들의 공동 통화 논의,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러시아와 중국의 탈달러화 무역 추진 등 대안적 통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통해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홍콩과 싱가포르 등 주요 금융 허브를 통해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는 SWIFT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디지털 위안화(e-CNY)는 국제 결제에서 달러의 역할을 대체할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의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SPFS라는 자체 금융 메시징 시스템을 개발했고, 유럽은 INSTEX를 통해 이란과의 무역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당장 달러 시스템을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미-중 사이에서 통화 전략을 고민하고 있지만, 달러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금융 시장에서 10년 이상 일하면서 봤을 때, 국제 금융의 인프라와 관행은 너무나 깊이 달러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국제 무역의 약 80%가 여전히 달러로 결제되고 있으며, 전 세계 외환 보유액의 60% 이상이 달러로 보유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제가 보기에 달러 시스템의 관성과 네트워크 효과는 여전히 강력하며, 대안 시스템들은 기술적, 정치적 한계에 직면해 있습니다. 위안화가 국제 통화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자본 통제 완화와 금융 시장 개방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중국 정부는 정치적 통제력 상실을 우려해 이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로화도 유럽 내부의 경제적 불균형과 정치적 통합의 한계로 인해 달러를 대체할 만한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들은 장기적으로 다극화된 통화 체제로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글로벌 통화 재설정의 필요성과 미래 전망

현재의 달러 중심 시스템은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글로벌 통화 재설정이 불가피함을 시사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통화 체제의 전환은 항상 위기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19세기 금본위제,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 1971년 이후의 달러 기반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모두 경제적 충격이나 위기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이후 막대한 재정 지출과 통화 완화로 인해 역사적 수준의 부채를 안고 있으며, 인플레이션 압력과 금융 시장의 취약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다가오는 10년 내에 또 한 번의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이 새로운 통화 체계로의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각국의 부채 증가와 통화팽창은 이러한 위기의 씨앗을 이미 뿌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GDP의 130%를 넘어섰고, 연방준비제도는 전례 없는 규모의 대차대조표 확대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달러의 장기적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통화 시스템의 변화를 가속화할 것입니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의 발전은 국경 간 결제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블록체인 기술은 거래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일 것입니다.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민간 디지털 화폐도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례로 중앙은행들도 이미 디지털 화폐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BIS(국제결제은행)는 여러 중앙은행 간 CBDC 프로젝트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통화 시스템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더 투명하고 분산된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며, 이 과정에서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단일 기축통화 체제에서 복수의 통화가 공존하는 다극화 체제로의 전환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정 국가에 집중된 '과도한 특권'을 분산시키고, 더 균형 잡힌 국제 금융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 금융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통화 시스템의 위기가 아니라, 세계 경제 질서의 대전환기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