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관점과 외부 관점
카너먼은 의사결정과 계획 수립에 있어 '내부 관점(inside view)'과 '외부 관점(outside view)'이라는 두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을 구분합니다. 내부 관점은 현재 직면한 특정 문제에 집중하여, 그 고유한 특성과, 우리가 가진 지식, 그리고 현재의 계획에 기반한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외부 관점은 현재의 프로젝트를 유사한 과거 사례들의 하나로 간주하고, 그러한 유형의 프로젝트들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통계적 정보를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새 집을 지을 때 내부 관점은 그 특정 집의 설계, 예산, 작업 계획 등 구체적 세부 사항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외부 관점은 "이 지역에서 이런 규모의 집을 짓는 프로젝트는 일반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카너먼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내부 관점을 취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이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얼마나 많은 의사결정이 지나치게 내부 관점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깨달은 점이었습니다. 기업의 전략 수립, 정부의 정책 결정, 심지어 개인의 중요한 생애 결정까지,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독특하고 특별한지를 강조하며 과거의 유사 사례로부터 배우는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우리 회사/팀/상황은 다르다'는 주장이 외부 관점의 도입을 막는 강력한 장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획 오류
카너먼에 따르면, 내부 관점에 의존할 때 우리는 '계획 오류'라는 체계적인 편향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거의 모든 프로젝트의 비용, 완료 시간,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이익이나 성과는 과대평가하는 현상입니다. 전 세계의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들이 예산의 수십에서 수백 퍼센트를 초과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 계획 오류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카너먼은 이러한 낙관적 편향이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인간 심리의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봅니다. 첫째, 우리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 통제 불가능한 외부 요인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둘째, 상상 속에서 시나리오를 구성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는 '시나리오 사고'에 빠집니다. 셋째,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계획에 대한 '과신'으로 인해 어려움을 과소평가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낙관적 편향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을 넘어 조직 문화와 사회적 압력에 의해 더욱 강화됩니다. 기업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 현실적인 위험 평가와 비용 예측을 제시하면 '부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고, 반대로 낙관적인 전망은 '비전이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공공 프로젝트의 현실적 비용을 제시하는 것보다, 낮은 비용과 큰 효과를 약속하는 것이 더 많은 지지를 얻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역학 관계가 계획 오류를 개인적 편향에서 집단적, 제도적 차원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실천적 방법론
카너먼은 계획 오류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참조 계층(reference class forecasting)'이라는 접근법을 제안합니다. 이는 자신의 프로젝트와 유사한 과거 사례들의 통계적 결과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예측의 기준점으로 삼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의 일정을 예측할 때, 유사한 규모와 복잡성을 가진 과거 프로젝트들의 실제 완료 시간을 분석하고, 그 분포를 기반으로 예측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단순히 과거의 평균치를 참고하는 것을 넘어, 결과의 분포와 변동성까지 고려하여 보다в 현실적인 위험 평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카너먼은 외부 관점이 내부 관점을 완전히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두 관점을 균형 있게 통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부 관점이 현실적인 기준점을 제공하고, 내부 관점이 프로젝트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외부 관점의 도입은 단순한 기술적 해결책이 아니라 의사결정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합니다. 이는 '우리는 특별하다'는 착각을 버리고, 자신의 프로젝트나 결정이 보편적인 패턴과 법칙에 영향을 받는다는 겸손함을 요구합니다. 특히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대규모의 참조 계층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증거 기반 의사결정(evidence-based decision making)'의 시대를 열어가는 중요한 발전이며, 기업과 정부 모두 이러한 방향으로 의사결정 체계를 혁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카너먼의 외부 관점 개념은 우리에게 자기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집단적 지혜와 경험으로부터 배우라는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